은하영웅전설의 정치와 라인하르트…(펌) Miscellany

아이디 : pyodogi
제목 : 은하영웅전설의 정치와 라인하르트…
  
개인적으로 은영전의 정치 상황 역시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고 보입니다. 라인하르트가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아쉽지만, 은영전 어느 상황에서도 라인하르트가 민중의 지지를 받을 만한 일은 한 일이 없습니다.

라인하르트의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나폴레옹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린 조국을 강대한 외적의 손에서 구해 내었고 정책적으로도 적극적인 민중 지지책을 착실하게 추구했습니다만, 라인하르트는 그러한 것을 한 것도 아닙니다.(은하제국의 체계를 볼 때 민중이 아스타테 전투에서 라인하르트가 이겼다는 것을 기뻐하고 그를 구국의 영웅으로 생각하기는 어려울 듯 하군요. 이는 물론 암리츠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민중들이 라인하르트를 지지한 것으로 보였다면 그것은 단지 부패한 귀족들에 대한 반감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해야 겠지요. 작가의 의도에 따르면 라인하르트는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도록 구성이 되어 있었겠지만, 역사적인 어떤 찬탈자(이 말이 어울린다면)도 그보다는 훨씬 나은 지도력과 카리스마를 지녔으며 정말로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지요. 반면, 라인하르트는 다만 귀족에 대한 반감을 한 곳에 끌어모아 상부에서의 정권 교체를 이루었을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볼때 민중 입장에선 주인이 바뀐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기에 그다지 열광할 입장이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도리어, 전쟁에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더 늘어났을 뿐이라고 할 지도 모르지요.


라인하르트가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으로 부하들을 이끌었다? 은영전을 보면 아무리 보아도 라인하르트가 카리스마로서 그들을 휘어잡은 것이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기존의 귀족 층에서 볼 때 이단자였고 배척되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의 대사 하나하나를 들어보면, 그들 역시 명예욕과 출세욕에 충실하게 젖어있는 평범한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인하르트는 기존 귀족 세력에 대한 그들의 불만을 표출시키기 위한 하나의 창구였다고 밖엔 할 수 없다는거죠.


하지만, 사실 그러한 은하 제국의 상황 자체가 지극히 부자연스럽습니다. 만약 언론이 발달했다면 자유행성동맹이라는 국가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부자연스럽게 이를데 없는 귀족정이 그대로 존속되기는 불가능합니다.(자유, 평등에 대한 의식은 마치 잉크처럼 국민들 마음에 스며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나, 언론이 발달되어 있지 않다면, 라인하르트가 했던 방식으로 귀족들의 불만을 이끌어내고 국민들이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라인하르트에게 열광하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라인하르트가 행한 일은 고대 왕국에서 나오는 역성 혁명 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점입니다. 역성 혁명 초기에 국가가 어느 정도 운영될지는 모르지만, 결국 똑같은 과정으로 썩어 문드러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물론, 외적이 없는 이상 왕권이 금새 약해지고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높습니다만…

은하영웅전설을 라인하르트에 맞춘다면, 운과 주위의 바보스러움을 바탕으로 역성 혁명을 성공시킨 젊은이가 병으로 일찍 죽었다…는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정치 이야기가 존재하나요? 아닙니다. 라인하르트의 치하에서 국민들에게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평등한 대우? 농담이겠지요. 단지 기존의 세력에게 배척되던 이들이 신흥 귀족으로 바뀐 것 뿐입니다.(본래 평민이었던 라인하르트 밑의 몇몇 사람들이 귀족으로 임명된 것은 나폴레옹 1세의 즉위 상황을 연상케합니다. 물론, 라인하르트는 나폴레옹과는 달리 국민 투표를 거친 것도, 그리고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차피 역성 혁명이었으므로 민중은 무시되었던 것이지요.)


자유행성동맹은 어떤가요? 이 역시 상당히 기묘한 국가입니다. 이 국가는 언론이 발달해 있는 듯 하지만, 그 언론은 사실상 정부(일부 정치가)의 손에 좌우되고 있기에 진정한 의미의 언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지나친 전쟁에 반발하고는 있지만- 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 듯 합니다. 아무리 보아도 자유행성동맹 쪽이 은하제국에 비해서 삶의 질이 몇 배 높습니다. 생산성 역시 훨씬 높은 듯 하군요. 국민들의 식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차별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정치가들이 권력을 쥐고 흔들지만 그들이 귀족 세력으로서 군림하면서 민중들을 착취하는 것은 전혀 존재치 않습니다. 국민들이 불만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 우리는 은하제국 밑으로 들어가고 싶다. '라고 말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국가에서 사실상 대부분의 민중들이 노예 취급 당하는 은하제국의 통치를 감수할까요? 국민 전원이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 어려울 겁니다. 라인하르트의 정책을 보면 자유행성동맹 지역에서 전시 징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을 가능성은 0입니다.(배상금을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난 규모의 원정을 반복했을 뿐만 아니라 수도 천도라는 대규모 사업까지 해치웠습니다. 그야말로 진시황제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과감한 정책 진행이었습니다. 설마하니, 그때의 은하제국은 그러한 사업을 세금이나 자유 행성 동맹으로부터의 배상금 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는 말일까요?


은하영웅전설에서 부패한 민주주의와 우수한 지도자에 의한 전제주의의 비교에 대한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것은 맞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작가 개인이 적당히 꾸며놓은 장치에서 이루어지는 짜고 하는 연극의 느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국민 대부분이 구식의 경제 체계에 머물러 있는 우주 시대와는 안 어울리는 은하 제국과, 21세기 수준 이상으로 기술과 경제 체계가 발전되어 있는 자유 행성 동맹의 대결이 대등하게 펼쳐진다는 것 자체가 일단 이상하지만, 그보다도 민중의 지지를 받을만한 일을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도리어 천도와 같은 민중의 반발을 살 일만을 거침없이 저지른) 라인하르트가 ' 위대한 절대 군주가 다스리는 전제 정치 '의 사례로 보여지는 것은 이상합니다. 물론, 정복을 통해서 인기를 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의 경우는 도가 지나치는 경향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것에 대한 신민의 반발을 무마할 생각도 전무한 듯 하고 말입니다.

솔직히 은영전은 10권이라는 짧은 이야기 속에서 광대한 국가의 정복전쟁이 성공하는 과정을 멋지게 그려주었다는 인상 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폴레옹이나 카이사르 정도의 천재조차 수십년에 걸쳐 정복을 했지만, 라인하르트는 몇년이란 짧은 시간에 인류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점령하도록 해야 했으니 어쩔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만.



p.s) 한가지 추가하자면, 동맹군의 침공 작전시 라인하르트가 사용한 초토 작전도 이상합니다.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정시 초토 작전은 러시아 민중의 지지를 받아 쿠투초프 장군의 철저한 계획하에 진행되었습니다. 더욱이, 러시아엔 본래 식량이 부족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라인하르트는 민중에게 지지를 받을 이유도 없었고, 착취받는 제국 신민들이 군대에 순순히 협조할 이유도 없는데 어떻게 그 짧은 시간 내에 각 지역의 식량을 몰수해서 사라질 수 있었던 것일까요? 제 아무리 제국 신민이 귀족의 말에 복종하도록 되어 있다고 해도 자신들의 식량들을 몰수해가는 상황에 이르러서까지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반면에, 동맹군에 대해서는 어쩌면 그렇게 간단히 반항하고 폭동을 일으킨다는 말입니까?

  이것 역시 제국의 라인하르트가 승리하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지 않을까요? 솔직히, 신(작가)의 도움이 없이 라인하르트가 승리할 수 있었을지 더욱 더 의심이 됩니다. 모든 것이 그에게 완벽하게 유리하게 되어 있고 그는 정말 신(작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밖에요.

+출저+
『SF War 클럽 : 스페이스 판타지』
http://www.sfwar.com/

 베스트 포럼 게시판 PYODOGI님의 글